Monday, April 10, 2023

콜로세움에서 십자가의 길 2005년 주님 수난 성금요일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마태 27, 22-23.26
빌라도가 군중에게 "그러면 메시아라고 하는 이 예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하니, 그들은 모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였다. 빌라도가 다시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하자,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어따.


묵상 默想
우리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이 세상의 심판자께서 지상의 재판관 앞에서 모욕을 받으시며 무기력하게 서 계십니다. 빌라도는 그렇게 악한 자는 아닙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그분을 놓아 드릴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유부단합니다. 결국, 그는 정의보다 자신과 자신의 지위를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을 소리 높여 요구한 사람들도 결코 악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오순절에 베드로 사도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그불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사도 2, 22-23) 하고 말하자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한" (사도 2, 37)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들은 집단 광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소리 지르기에 소리 지릅니다. 사람들의 비겁함과 나약함, 지배적 의견과 결정에 맞서기를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정의가 짓밟혔고, 나지막한 양심의 소리는 군중의 외침에 묻혀 버렸습니다. 우유부단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였기에 악이 세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기도 祈禱
주님, 주님께서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양심의 소리를 짓눌러 버렸기에 사형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양심의 외면으로 역사 안에서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학대와 처벌과 사형을 당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희 자신은 여전히 진리보다는 성공을, 정의보다는 명성을 더 좇고 있습니다. 저희 삶에서 양심이 두드리는 나직한 소리, 주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해 주소서.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 사도를 바라보신 것처럼 저희를 바라보아 주소서. 주님의 눈길로 저희 영혼을 꿰뚫고 저희 삶의 방향을 잡아 주소서. 오순절에 주님께서는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회개시키시어, 저희 모두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저희에게 언제나 회개의 은총을 새로이 내려 주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Stabat mater dolorosa,
iuxta crucem lacrimosa,
dum pendebat Filius.
주 예수 높이 달리신
십자 곁에 성모 서서
비통하게 우시네.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마태 27, 27-31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조롱하였다. 또 그분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때렸다.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외투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묵상 默想
예수님께서는 '자칭 임금이라고 하였다' 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또 조롱을 당하시지만, 바로 그 조롱 속에 진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세상의 권력자가 지니는 권력의 상징들이 진리와 정의, 인간 존엄성을 얼마나 자주 모멸합니까! 그들의 온갖 예식과 장황한 연설들은 사실상 포장된 거짓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가시관을 쓰시고 조롱을 받으시는 예수님께서는 참다운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왕홀은 공정의 홀입니다 (시편 45[44], 7 참조). 이 세상에서 정의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참된 임금님이신 예수님께서는 폭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스리십니다.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또 우리와 함께 고통을 겪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고 계시는 십자가는 바로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과 세상의 무게를 함께 지고 계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앞서 가시며 우리에게 참생명의 길을 발견하는 법을보여 주십니다.


기도 祈禱
주님,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주님을 조롱하고 비난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고통 받는 이들과 약한 이들을 조롱하는 데에 저희가 동조하지 않게 해 주소서. 비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게서 주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게 도와주소서.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일이 멸시의 대상이 되어 세상이 조롱하여도 좌절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저희가 그 길을 따르도록 저희를 부르셨습니다 (마태 10, 38 참조). 저희가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시고, 비록 삶이 고달프더라도 불평하거나 낙담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저희가 사랑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시고, 사랑의 요구에 순종하며 참다운 기쁨에 이르게 해 주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Cuius animam gementem,
contristatam et dolentem
pertransivit gladius.
섧고 슬픈 성모 성심
수난 칼에 깊이 찔려
참혹하게 뚫렸네.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이사 53, 4-6
'주님의 종' 은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묵상 默想
인간은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인간은 더 이상 하느님 모습을 닮지 않고 자기 자신을 욕되게 함으로써 자주 창조주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 다가 강도들을 만나 옷을 빼앗기고 초주검이 되어 피 흘리며 길가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십자가에 짓눌려 예수님께서 쓰러지신 것은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맞아 기력이 다하시어 넘어지신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서에서 말한 것처럼 훨씬 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리 2, 6-8).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넘어지신 것은 그분께서 걸어가시는 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자만심을 없애시고자 스스로를 기꺼이 낮추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인간 교만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해방되어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는 교만, 영원한 사랑은 필요 없다고 믿으며 우리 삶의 지배자가 되려고 하는 교만입니다. 이렇게 진리에 맞서고,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고, 자신의 창조자이자 심판관이 되려고 하는 교만으로 우리는 넘어져 결국 자기 파괴의 구렁에 떨어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낮추심으로써 우리의 교만을 일깨워주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낮추심으로써 인간을 일으켜 주십니다.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는 그분께 우리 자신을 맡깁시다. 자만과 자율에 대한 그릇된 욕구를 벗어 버리고, 스스로를 낮추신 그분을 본받아, 우리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과 핍박받는 형제들 앞에 겸손하게 머리를 숙임으로써 우리의 참된 위대함을 발견합시다.


기도 祈禱
주 예수님,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땅에 쓰러지셨습니다. 저희 죄의 무게가, 저희 교만의 무게가 주님을 짓누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넘어지신 것은 비극을 암시하는 것도, 인간적인 나약함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교만으로 쓰러져 있는 저희를 만나러 오시고자 하셨습니다. 스스로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희의 교만은 인간을 상품처럼 사고팔 수 있게 하고, 실험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으로 죽음을 정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였습니다. 주님, 넘어진 저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소서. 주님의 겸손을 본받아, 저희를 파괴시키는 교만을 버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O quam tristis et afflicta
fuit illa benedica
mater Unigeniti!
간택되신 동정 성모
독생 성자 운명하니
애통하심 한없네.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루카 2, 34-35.51

시메온은 예수님의 부모와 아기 예수님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묵상 默想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는 성모님도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하시는 동안에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 곧 예수님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가족에게 자리를 양보하시느라 뒤로 물러나 계셔야 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도 들으셔야 했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태 12, 48-50). 이제 우리는 성모님께서 육으로뿐만 아니라 영으로도 예수님의 어머니시라는 것을 압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잉태하시기 전에 이미 당신의 순명으로써 예수님을 마음으로 잉태하셨습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주실 것이다” (루카 1, 31-32).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얼마 안 되어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 (루카 2, 35)라는 말을 시메온에게서 들으셔야 했습니다. 그때 성모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예언자의 말씀을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이사 53, 7). 이제 이 모든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일이 시작되었을 때,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루카 1, 30)하고 천사가 한 말을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머니다운 용기, 어머니다운 충실성, 어머니다운 자애, 그리고 어둠에 맞서는 믿음으로 그곳에 남아 계셨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 1, 45).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루카 18, 8) 그렇습니다. 이 순간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이 순간 그분께 가장 커다란 위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사실입니다.


기도 祈禱
주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제자들은 도망갔지만 성모님께서는 끝까지 남아 계셨습니다. 성모님께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어머니가 되시리라는 믿기 어려운 천사의 예고를 믿으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에 계신 순간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모님께서는 십자가의 순간,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을 뒤덮은 순간에, 믿는 이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성모님께 간청하오니, 저희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시어, 이 믿음으로써 저희가 이웃에게 봉사하고, 다른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여 그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게 해 주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Quæ mærebat et dolebat
Pia Mater, cum videbat
Nati pœnas inclyti.
아들 수난 보는 비통
맘 에이는 환난 중에
성모 홀로 계시네.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마태 27, 32; 16, 24
군사들은 [총독 관저를]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보고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묵상 默想
키레네의 시몬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형 수들의 슬픈 행렬을 보게 됩니다. 사실 그에게는 익숙한 장면 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강제로 이 건장한 시골 사람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뜻하지 않게 사형수들의 운명에 얽히게 되었으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착잡하였겠습니까?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그는 시키는 대로 합니다. 의미심장하게도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던 그의 아들들의 이름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르 15, 21 참조). 이러한 우연한 만남에서 신앙이 생겨났습니다. 이 키레네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이분을 도와 드릴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커다란 은총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고통을 겪으시며 침묵하시는 예수님의 신비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거룩한 사랑만으로도 인류 전체를 구원하실 수 있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채우시고자 (콜로 1, 24 참조) 우리가 당신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기를 바라십니다. 고통 받는 이, 박해받는 이, 힘 없는 이를 선의로 대하고 그들의 고통을 나누어 질 때 우리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구원을 받고 또 우리 자신이 세상 구원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기도 祈禱
주님, 주님께서는 키레네 사람 시몬의 눈과 마음을 열어 주시고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게 하심으로써 그에게 신앙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한 부르심이 저희의 계획이나 바람과 어긋난다 하더라도 저희가 고통 받는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해 주소서. 다른 이의 십자가를 함께 질 수 있음이 은총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저희가 주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음을 알게 하소서. 저희가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고 이 세상의 고통을 나눌 때에 비로소 구원의 일꾼이 되고, 주님의 몸인 교회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Quis est homo qui non fleret,
Matrem Christi si videret
in tanto supplicio?
예수 모친 이런 통고
받으심을 보고 누가
울지 아니하리요?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림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이사 53, 2-3
‘주님의 종’ 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 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또는 시편 27(26), 8-9
“너희는 내 얼굴을 찾아라.” 하신 당신을 제가 생각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지 마시고, 분노하며 당신 종을 물리치지 마소서. 당신은 저의 도움이십니다.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저를 버리지 마소서.


묵상 默想
“주님,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지 마소서” (시편 27[26], 8-9). 그리스 전통에서 베레니케라고 불리는 베로니카는 구약의 모든 독실한 신앙인의 공통된 염원, 곧 하느님의 모습을 뵙고 싶어 하는 모든 믿는 이의 염원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서 처음에 베로니카는 여성다운 친절로써 예수님께 수건을 건네 드렸습니다. 베로니카는 군인들의 난폭함에 굴하지도 않고, 제자들처럼 두려움으로 꼼짝 못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지만 선한 용기를 지니고 마음이 흐려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주님꼐서는 산상 설교에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태 5, 8)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베로니카는 조롱받으시고 고통으로 일그러지신 얼굴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행위는 그녀의 마음에 예수님의 참모습을 새겨 넣었습니다. 베로니카는 피투성이의 예수님 얼굴에서 하느님의 얼굴과, 가장 깊은 고통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마음을 통해서만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우리를 볼 수 있게 하고,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오직 사랑만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기도 祈禱
주님, 저희가 주님의 얼굴을 찾으려 애쓰는 마음을 가지게 해 주소서. 저희가 사물의 겉모습만 보는 어리석음을 가지지 않고, 세상 안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단순함과 순수함을 가지게 해 주소서. 저희가 큰일을 할 능력이 없을 때에는 겸손하게 저희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주소서. 주님의 얼굴을 저희 마음에 새겨 주시어, 저희가 주님을 뵈옵고, 주님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게 하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Pro peccatis suæ gentis
vidit Iesum in tormentis
et flagellis subditum.
아들 예수 우리 위해
모욕 채찍 감수함을
성모 친히 보시네.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애가 3, 1—2.9.16
나는 그분 격노의 막대로 고통을 겪은 사나이. 그분께서는 빛 없는 어둠 속으로 나를 몰아쳐 걷게 하시고…내 길에 마름돌로 담을 쌓으시며 내 앞길을 막아 버리셨네. 내 이가 자갈을 씹어 부서지게 하시고 나를 땅에다 짓밟으셨네.


묵상 默想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세 번 넘어지셨다는 전승은 아담의 타락, 곧 우리 인간의 타락과 예수님께서 타락한 인간의 운명에 몸소 동참하신 신비를 상기시켜 줍니다. 인간의 타락은 역사 안에서 늘 새로운 형태를 띱니다. 요한 성인은 그의 첫째 서간에서 육의 욕망과 보이는 것을 다 가지려는 눈의 탐욕, 그리고 호화로운 생활에 만족해 하며 가지는 자만심이라는 인간의 세 가지 타락에 관하여 말하며, 당시의 사치와 타락의 악행을 배경으로 인간과 인간성의 타락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더욱 최근의 역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에 염증을 느끼고 주님을 떠난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거창한 이념들과, 더 이상 아무것도 믿지 않고 되는 대로 사는 세속주의의 삶은 새로운 이교, 곧 하느님을 영원히 제거하려 함으로써 결국 인간 자신을 제거하고 마는 더욱 사악한 이교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먼지 더미속에 넘어져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짐을 지시고 우리에게 오시려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시며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시고,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려고 넘어지십니다.


기도 祈禱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저희의 짐을 짊어지셨고 지금도 여전히 짊어지고 계십니다. 저희의 짐이 주님을 바닥에 쓰러뜨렸습니다. 그러나 저희를 일으켜 세워 주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저희 혼자 힘으로는 먼지 더미에서 일어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를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저희에게 돌로 된 마음 대신 살로 된 마음, 볼 수 있는 마음을 다시 주소서. 거짓 주장을 물리치고 그 허구성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하시며, 물질주의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주님을 다시 알아볼 수 있게 해 주소서. 저희가 악의 세력에 맞설 수 있도록 맑은 정신으로 언제나 깨어 있게 해 주시고, 다른 이들의 간절한 요구들을 살펴 도와줄 수 있게 해 주소서. 저희를 일으켜 세워 주시어, 저희도 다른 이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게 해 주소서. 이 모든 어둠 속에서도 저희에게 밝은 빛을 주시어, 저희가 세상에 희망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Quis non posset contristari,
Christi matrem contemplari,
dolentem cum Filio?
성모 그 아들과 함께
고난 겪음 보고 누가
통곡 아니하리요?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루카 23, 28-31
예수님께서는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보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배어 보지 못하고 젖을 먹여 보지 못한 여자는 행복하여라!’ 하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산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 내려라.’ 하고 언덕에게 ‘우리를 덮어 다오.’ 할’ 것이다. 푸른 나무가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마른나무야 어떻게 되겠느냐?”


묵상 默想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며 당신을 위하여 우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위로하며 하신 말씀을 우리는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합니까? 그것은 회개와 살아 있는 믿음으로 이끌어 주지 못하는 순전히 감상적인 믿음을 경고하신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삶은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이 세상 고통에 탄식만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그러한 위험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죄의 무게와 심판의 무게를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없는 이들의 고통 앞에서 두려워하면서도, 악의 신비를 너무 하찮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심판의 모습은 무시한 채, 하느님과 예수님의 부드럽고 자애로운 모습만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나약함을 크게 염려하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자의 고난을 바라보면서 죄의 무게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고, 그 죄를 이기려면 철저히 속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고난 받으시는 주님의 모습 앞에서 악은 더 이상 하찮은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푸른 나무가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마른나무야 어떻게 되겠느냐?”


기도 祈禱
주님, 주님께서는 울고 있는 여인들에게 회개와 심판의 날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날에 저희는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저희의 양심을 속이고 이전과 변함없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악의 꼬임에서 벗어 나도록 촉구하십니다. 또한 저희의 막중한 책임과,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심판의 날을 맞게 될 위험을 경고하십니다. 저희가 그저 연민의 말이나 늘어놓으면서 주님을 따르지 않도록 해 주소서. 저희가 회개하게 하시고, 저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소서. 저희가 결국 마른나무로 남지 않고, 참포도나무이신 주님의 살아 있는 가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맺도록 해 주소서 (요한 15, 1-10 참조).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Tui Nati vulnerati,
tam dignati pro me pati,
pœnas mecum divide.
나를 위해 상처 입고
괴롬 겪은 주의 통고
내게 나눠 주소서.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애가 3, 27-32
젊은 시절에 멍에를 메는 것이 사나이에게 좋다네. 그는 홀로 말없이 앉아 있어야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짐을 지우셨기 때문이네. 그는 제 입을 먼지 속에 박아야 하네. 어찌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는 자신을 때리는 이에게 뺨을 내주며 수치를 가득히 받아야 하네. 주님께서는 마냥 버려두지 않으시네. 고통을 주셨다가도 당신의 크신 자애로 가엾이 여기 시네.


묵상 默想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세 번째 넘어지신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인류 전체의 추락,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져 무신론적 세속주의에 빠진 수많은 인간의 추락을 뜻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 안에서 얼마나 고통을 받으셔야 하는지도 생각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체가 얼마나 자주 남용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헛되고 악한 마음으로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있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주님의 현존을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만을 내세우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왜곡되고 있습니까! 그 수많은 이론들 뒤에 감추어진 믿음은 얼마나 빈약하며, 또 헛된 말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 안에는, 심지어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할 사제들 안에 서조차 얼마나 많은 문제가 일어납니까! 얼마나 많은 교만과 자만이 넘치고 있습니까! 또한 우리는 주님께서 넘어진 우리를 다시 세워 주시고자 우리를 기다리시는 고해성사를 얼마나 게을리 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수난에 다 드러나 있습니다. 제자들의 배반, 주님의 몸과 피를 합당하지 않게 받아 모시는 것은 분명 구세주의 마음을 창에 찔린 듯 아프시게 하는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하여 마음속 깊이 이렇게 외칠 따름입니다. ‘키리에 엘레이손 – 주님, 저희를 구해 주소서’ (마태 8, 25참조).


기도 祈禱
주님, 주님의 교회는 물이 가득 차 가라앉으려는 배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밭에는 밀보다는 가라지가 더 많아 보입니다. 주님 교회의 더러워진 겉모습에 저희 마음은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더럽힌 자는 바로 저희입니다. 저희는 온갖 고상한 말과 행동을 하고서도 또다시 주님을 배신하고 있습니다. 주님, 교회 안에서 아담은 늘 다시 넘어지고 있사오니, 주님의 교회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희가 타락하여 주님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니, 사탄이 기뻐 웃습니다. 사탄은 주님께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시기를, 주님의 교회가 타락하고 주님께서 패배자로 땅바닥에 쓰러져 계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시 일어나시어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를 일으켜 세워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 주님의 교회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소서. 또한 저희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Eia mater, fons amoris,
me sentire vim doloris
fac, ut tecum lugeam.
사랑의 샘인 성모여
나에게도 슬픔 나눠
함께 울게 하소서.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마태 27, 33-36
이윽고 골고타 곧 ‘해골 터’ 라는 곳에 이르렀다. 군사들이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를 예수님께 마시라고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맛을 보시고서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진 다음, 거기에 앉아 예수님을 지켰다.


묵상 默想
예수님께서는 옷을 빼앗기셨습니다. 옷은 인간에게 사회적 지위를 부여해 줍니다. 곧 사회 안에서 그의 위치를 부여하고, 그를 뭔가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공개적으로 옷이 벗겨진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존재, 모든 사람의 멸시를 받고 사회에서 추방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옷이 벗겨지는 순간은 낙원에서의 추방을 연상시킵니다. 하느님의 광채가 인간에게서 멀어졌으며, 이제 인간은 알몸이 훤히 드러난 것을 부끄러워하며 벌거숭이로 서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의 상태를 다시 한 번 받아들이십니다. 옷이 벗겨지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제일가는 겉옷’, 곧 하느님의 광채를 상실하였음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십자가 밑에서 군사들은 그분의 보잘것없는 겉옷을 차지하려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복음사가들은 시편 (22[21], 19)의 말씀으로 이 장면을 설명하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엠마오에서 제자들에게 하실 말씀을 미리 들려줍니다. 곧 이 모든 것이 ‘성경에 쓰인 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어떤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일어난 모든 일은 하느님의 말씀에 담겨 있고,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적 상실의 모든 단계를 거치셨는데, 그 각 단계는 주님께서 온갖 고통을 받으시며 우리의 구원을 향하여 나아가신 걸음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다시 집으로 데려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 복음사가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요한 19, 23) 예수님의 속옷도 제비뽑기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것이 대사제의 겉옷을 암시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사제의 겉옷은 솔기 없이 ‘하나의 실로 짜인 것’ 이었습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다 고대사』 [Antiquitates Judaicae], III, 161 참조).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께서는 참다운 대사제이십니다.


기도 祈禱
주 예수님, 사람들이 주님의 옷을 벗기고, 주님을 모욕하며 사회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담의 치욕을 대신 짊어지시고, 그것을 씻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곤궁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예언자들의 말을 실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셨으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님과 저희 그리고 온 세상의 주인이심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저희가 스스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가장 연약한 태아의 단계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과 모든 사람을 깊이 존중하게 해 주소서. 주님 은총의 빛으로 저희를 감싸 주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Fac ut ardeat cor meum
in amando Christum Deum,
ut sibi complaceam.
내 마음에 천주 예수
사랑하는 불을 놓아
타오르게 하소서.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마태 27, 37-42
군사들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죄명을 붙여 놓았다. 거기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 예수다.’ 라고 쓰여 있었다. 그때에 강도 두 사람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못 박혔다. 지나가던 자들이 머리를 흔들어 대며 예수님을 모독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는 자야,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과 함께 조롱하며 말하였다.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묵상 默想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토리노의 수의를 보면 그 과정이 얼마나 잔인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사가 내민 신 포도주를 드시지 않고 십자가의 모든 고통을 의식적으로 겪으셨습니다. 온몸으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성경에 나온 말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인간이 아닌 구더기, 사람들의 우셋거리, 백성의 조롱거리” (시편 22[21], 7).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면시만 받았으며…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이사 53, 3-4). 이러한 고통의 모습, 고난 받으시는 하느님의 아드님 앞에 멈추어 서서 그분을 바라봅시다. 교만과 쾌락에 빠지는 순간마다 그분을 바라보며 겸손을 배우고, 모든 현세 재물의 덧없음을 깨닫도록 합시다. 고난과 시련이 닥칠 때마다 그분을 바라보며 우리가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있음을 깨닫도록 합시다. 우리가 멸시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분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노력합시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시고자 당신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고난을 견디시는 주님 앞에서 우리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님을 믿어 옥에 갇힌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소아시아 스미르나의 그리스도인들을 칭송하였습니다. 성인은 그들이 마치 영과 육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듯이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졌다고 말하였습니다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서간』[Epistula ad Smyrnaeos], 1,1). 우리도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가 그분에게서 벗어나 그분을 조롱하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기도 祈禱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으시고, 주님의 몸과 존엄이 파괴되는 것을 참아 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피하려 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저희도 저희의 소명을 회피하지 않게 해 주시고, 주님과 굳게 결합되어 주님 안에 머물도록 도와주소서. 저희를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거짓 자유의 가면을 벗겨 주소서. 저희를 ‘사로잡는’ 주님의 자유를 받아들이게 해 주시며, 주님께 굳게 ‘매여’ 참된 자유를 얻도록 도와주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Sancta mater, istud agas,
Crucifixi fige plagas
cordi meo valide.
아 성모여, 못 박히신
주의 상처 내 마음에
깊이 새겨 주소서.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요한 19, 19-20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 라고 쓰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그 명패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히브리 말, 라틴 말, 그리스 말로 쓰여 있었다.


또는 마태 27, 45-50.54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 되었다. 오후 세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뜻이다. 그곳에서 있던 자들 가운데 몇이 이 말씀을 듣고, “이자가 엘리야를 부르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와 신 포도주에 듬뿍 적신 다음, 갈대에 꽂아 그분께 마시게 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가만,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해 주나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켜던 이들이 지진과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며,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심을 기억하며 잠시 침묵한다.


묵상 默想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 위에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가리키는 명패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당시의 국제어인 라틴 말과 그리스 말 그리고 선택된 민족의 언어인 히브리 말로 약속된 다윗의 자손, ‘유다인들의 임금’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공정치 못한 재판관이었던 빌라도는 뜻하지 않게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임금님이심을 온 세상에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라는 호칭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 호칭이 권력과 구원에 대한 인간적이고 그릇된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호칭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위에 공개적으로 새겨졌습니다. 이리하여 그분께서는 참으로 세상의 임금님이 되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참으로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낮아지심으로써 높이 올려지신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사랑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시고,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써 사랑이신 참된 하느님을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께서 누구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참된 임금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편에 나오는 말씀으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시편 22[21], 2) 하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고난 받는 인류 전체를,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어둠의 비극을 어깨에 짊어지시고, 당신께서 완전히 패배하시고 존재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의 우주적 사건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돌아가시자 세상이 어두워집니다. 땅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다른 민족들의 교회가 태어납니다. 로마의 백인 대장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깨닫고 예수님을 받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늘 새로운 승리를 거두십니다.


기도 祈禱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 돌아가시는 순간 태양은 빛을 잃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새롭게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희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어둠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끝없는 나약함과 사악함으로 하느님의 모습, 주님의 모습이 어둠 속에 가려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알려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 받으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시기에 높이 들어 올려지신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주님, 저희가 이 어둠과 혼돈의 시기에 주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주소서. 이 어둠과 고난의 시기에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게 도와주시고, 세상에 주님을 새로이 보여 주소서. 저희에게 주님의 구원을 드러내 주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Fac me vere tecum flere,
Crucifixo condolore,
donec ego vixero.
사는 동안 내가 울고
주와 함께 십자 고통
참아 받게 하소서.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마태 27, 54-55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이들이 지진과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며,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다.

묵상 默想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로마 군사의 창에 찔리 예수님의 심장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옵니다. 이는 주님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의 표상으로서, 이를 통하여 교회는 늘 새롭게 다시 태어납니다. 주님의 다리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다른 두 죄인과 달리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께서는 뼈를 부러뜨려서는 안 되는(탈출 12, 46 참조) 참된 파스카의 어린양이심을 증명하십니다. 모든 고통이 끝난 지금, 주님께서는 결코 혼자가 아니셨습니다. 주님께 충실한 이들이 주님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는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자매인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도 서 있습니다. 아리마태아 출신의 요셉이라는 부자도 있습니다. 이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어느 동산에 마련해 놓은 자신의 무덤에 모십니다. 예수님 시신이 안치되신 묘지는 동산입니다. 아담이 충만한 생명이신 하느님을 배신하고 쫓겨난 바로 그 동산과 같습니다. 동산의 무덤은 죽음의 지배가 끝나 감을 상징합니다. 그곳에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인 니코데모도 나타납니다. 그는 예수님께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남의 신비를 언젠가 들었던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결의한 최고 의회 의원 가운데에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예수님을 알아보고 인정한 신앙 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큰 슬픔과 어둠, 절망의 순간에 희망의 빛이 신비롭게 현존 하고 있습니다. 감추어 계시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신 하느님으로 우리 가까이 머물러 계신 것입니다. 돌아가신 주님께서는 죽음의 어둠 속에서도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로 머물러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그분의 새 가족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기도 祈禱
주님, 주님께서는 죽음의 어둠 속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시신은 선한 사람들이 거두어 깨끗한 아마포로 감쌌습니다 (마태 27, 59 참조). 믿음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태양이 완전히 져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얼마나 자주 잠들어 계시는 듯 보이는지 모릅니다! 저희는 얼마나 쉽게 뒤로 돌아서서 ‘하느님은 죽었다.’ 고 속삭이는지 모릅니다. 어둠의 시기에, 저희가 주님께서 여전히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낙담하려 할 때에 저희를 잡아 일으켜 주소서. 저희가 주님을 홀로 버려두는 일이 없게 해 주소서. 혼란의 시기를 이겨 내는 성실함과, 주님께서 가장 고통스러워하실 때 성모님께서 주님을 다시 한 번 품에 안으셨던 사랑을 저희에게 베풀어 주소서. 가난하든 부유하든, 배운 것이 많든 적든, 저희의 모든 두려움과 편견을 넘어서 주님께 저희의 능력, 저희의 마음, 저희의 시간을 바쳐 부활을 기다리는 동산을 마련할 수 있게 해 주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Vidit suum dulcem Natum
morientem, desolatum,
cum emisit spiritum.
십자가상 아들 흘린
피에 젖은 붉은 땅을
성모 친히 보시네.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 Adorámus te, Christe, et benedícimus tibi.
℞. Quia per sanctam Crucem tuam redemísti mundum.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성경 말씀 마태 27, 59-61
요셉은 시신을 받아 깨끗한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시고 나서,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고 갔다. 거기 무덤 맞은쪽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


묵상 默想
조롱과 모욕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영예롭게 요셉의 새 무덤에 안치되셨습니다. 니코데모는 귀한 향을 내는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습니다. 베타니아에서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가득’ 부어 드린 것처럼, 우리는 성자의 희생에서 하느님의 아낌없는 사랑, ‘넘치는’ 사랑을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넘치는 사랑을 주셨거늘, 우리가 하느님께 아까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에서 가르쳐 주시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마태 5, 20 참도). 그러나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내가 우리를 통하여 곳곳에 퍼지게 하십니다…우리는…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2 코린 2, 14.15). 거짓된 주장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다시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는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안치하는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실현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 24). 예수님께서는 죽은 밀알이십니다. 바로 그 죽은 밀알에서 세상 끝까지 먹여 살릴 수 있는 엄청난 양식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허기를 충분히 채워 주실 뿐만 아니라 배불리실 수 있는 생명의 빵이십니다. 영원한 하느님의 말씀이 강생하셔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를 위한 빵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위에는 성체성사의 신비가 빛나고 있습니다.


기도 祈禱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무덤에 묻히셔서 죽은 밀알이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시대에 영원히 풍성하게 열매 맺는 밀알이 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위하여 내어 주신 몸, 참된 만나인 생명의 빵을 보장하는 밀알의 약속이 그 무덤에서 모든 시대에 빛나고 있습니다. 영원한 말씀은 강생과 죽음을 통하여 저희 곁에 계십니다. 주님의 몸은 저희 손 안에 놓여지고, 저희 마음 안에 들어가시어, 저희 안에서 자라나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처럼 저희를 위하여 주님 자신을 바치시어, 저희 또한 목숨을 버림으로써 목숨을 얻을 수 있다는 밀알의 약속을 믿게 하셨습니다. 저희가 주님의 성체의 신비를 더욱 사랑하고 공경하며, 천상 양식인 주님을 저희 생명의 원천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저희가 주님의 ‘향기’ 가 되어, 주님의 신비로운 삶의 자취를 이 세상에 널리 퍼뜨릴 수 있게 도와 주소서. 땅에 떨어진 밀알이 자라나 줄기와 이삭을 맺듯이, 주님께서도 무덤 안에 머물러 계실 수 없으셨습니다.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성부께서 주님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주님의 육신이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게 하셨기’ (사도 2, 31; 시편 16[15], 10 참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몸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시어, 변모된 우리 몸을 위한 자리를 하느님의 마음 한가운데에 마련해 두셨습니다. 저희가 이러한 희망속에서 기뻐 용약할 수 있게 해 주시고, 기쁜 마음으로 그 희망을 세상에 전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저희를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해 주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ed líbera nos a mal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Quando corpus morietur,
fac ut animæ donetur
paradisi gloria. Amen.
예수여, 육신 죽어도
영혼이 천당 영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아멘.


BENEDICTIONIS
강복 降福
℣. Dominus vobiscum.
℞. Et cum spiritu tuo.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Sit nomen Domini benedictum.
℞. Ex hoc nunc et usque in sæculum.
℣. 주님의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 이제와 영원히 받으소서.
℣. Adiutorium nostrum in nomine Domini.
℞. Qui fecit cælum et terram.
℣. 우리의 도우심은 주님의 이름에 있도다.
℞.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로다.
℣. Benedicat vos omnipotens Deus,
Pater, et Filius, et Spiritus Sanctus.
℞. Amen.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소서.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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