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카르야에게 성전에서 일어난 그 일이 있은 뒤, 긴 시간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떤 생각들이 오갔을지 상상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아마도 그는 천사에게 말 못 하게 된 것에 대해 그다지 기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그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사제로서의 삶은 거의 불가능해졌을 것입니다. 성전에서 그가 노래하듯 바치던 시편과 기도와 찬미가들을 그는 더 이상 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의 성전 봉직 기간이 끝나자 그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읽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조금 쓸모없게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금 더 겸손해졌을지도 모릅니다. 더 조심스러워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주님께서 그에게 이루고 계신 일을 앞에 두고 마음 안에서도, 내적으로도 침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십자가들을 그저 단순한 불운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우리는 왜 하느님께서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일을 보내시는지 묻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견딜 힘이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모르시는 것일까요? 어려운 배우자, 노쇠한 부모, 말을 듣지 않는 자녀들, 재정적인 어려움…. 이런 것들은 소음으로 가득 찬 마음,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찬 마음에 다가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다른 태도를 시도해 본다면 어떨까요? 우리의 굴욕이 우리를 겸손하게 하도록 허락한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결국 즈카르야가 그랬던 것처럼, 감사와 경외심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우리는 정화되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맡기고, 반항하기를 멈추는 법을 배우지 않겠습니까? 순종하는 것이 그렇게도 쉬운 일인데 말입니다.
하느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단지 계명들을 지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그분이 내 삶의 주님이심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내게 보내시는 모든 것이 나의 선을 위한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순종은 고요하고 침묵하는 마음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이 성탄을 앞둔 이 시기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 방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분께 순종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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